설법하는 법사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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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하는 법사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설법하는 법사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又不得於主法人에 生輕薄想하라
      우부득어주법인에 생경박상하라
      因之於道에 有障하면 不能進修하리니 切須愼之 어다
      인지어도에 유장하면 불능진수하리니 절수신지어다
      論에 云하되 如人이 夜行에 罪人이 執炬當路어던
      론에 운하되 여인이 야행에 죄인이 집거당로어던
      若以人惡故고 不受光明하면 墮坑落塹去矣라하시니
      약인이악고고 불수광명하면 타갱락참거의라하시니
      聞法之次에 如履薄氷하야 必須側耳目而聽玄音하면
      문법지차에 여리박빙하야 필수측이목이청현음하면
      肅情塵而賞幽致라가 下堂後에 墨坐觀之하되
      숙정진이상유치라가 하당후에 묵좌관지하되
      如有所疑어던 博聞先覺하며 夕( )朝詢하고 不濫絲髮이어다
      여유소의어던 박문선각하며 석창존순하고 불랍사발이어다
      如是라야 可能生正信하야 以道爲懷子歟인저
      여시라야 가이생정신하야 이도위회자여인저

      * 또 설법하는 법사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이로 말미암아 도에 장애가 생기면 공부가 나아가지 못할 것이니,
      부디 삼가야 할 것이다.
      옛 글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갈 때에, 죄인이 횃불을 들고 있는 데, 그 사람이 나쁘다고 하여 불빛마저 받지 않으면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법을 들을 때에는 엷은 얼음을 밟듯이,
      반드시 귀와 눈을 기울려 법문을 듣고,
      마음에 번뇌를 맑히고 깊고 그윽한 이치는 맛봐야 한다.
      설법전에서 내려와서는 고요히 앉아 생각하다가,
      의심 가는 데가 있으면 선지식을 두루 찾아,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묻고 하여 조금도 소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바른 믿음이 생겨 도에 전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마음 쓰는 것은 같다.
      과거에 비해 과학과 물질은 발달했으나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보조스님이 고려시대 국사이시지만 초심자들이 법문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법문을 들을 기회가 와서 법문을 듣는 데 법사의 법문이 너무 어려워 아득히 멀리 보이면서 스스로가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법문이 너무 평이해서 쉽게 여기고 늘 듣는 것이고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나태해 공부하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거나, 법문하는 법사를 업신 여겨 법사를 헐뜯고 욕하며 이런 저런 비방을 일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로 향후에 스스로가 공부하는데 장애가 따르며 또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에 다른 이로 하여금 업신여기는 과보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시다.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스스로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가는데 천 가지 만 가지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이 횃불을 들고 와 가지고 가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과거에 천 가지 만 가지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라 하여 미워하고 업신여겨 그 횃불을 받지 않고 밤길을 간다면 스스로가 모르는 사이에 구덩이에 빠져 더 큰 고통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선한 일은 선한 사람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선한 행동은 선한 사람이 많이 행하지만 악한 사란도 마을을 돌이키면 바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악한 마음을 돌이켜 선한 행동을 행하는데 스스로가 아는 어제의 선입견으로 그가 행하는 선한 행동의 밤길을 밝혀 주고자하는 횃불을 받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못 쓴 것이라고 꾸중하신 씀이시다.

      마음은 항상 엷은 얼음을 밟듯이 귀와 눈과 마음으로 잘 살피며 조심조심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는 하나하나의 행동은 과거로부터 지어온 훈습에 의해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먹지 안아도 행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법을 듣고 법의 이치를 알려고 한다면 들은 법에 따라 생각하고 법에 따라 오래도록 행동 하여야 한다. 오래 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면 언젠가는 스스로도 모르게 법과 같이 행동하고 있음을 스스로 볼 수 있다.

      법문을 듣고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그는 법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까닭은 오늘에 법문을 듣고 어제와 같이 행동했다면 그는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어제의 행동을 고치고 어제의 사고를 고치려고 하는데 힘들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뤄지겠는가. 법문을 듣고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그는 이미 실천을 행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조회수 : 1655 , 추천 : 0 , 작성일 : 2005-06-13 , IP : 61.106.127.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