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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_()_

우담유정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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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雲初起大界 流布普灑浮埃

爲一潭雨 雨來雨去 寂若像法

願度衆生 此心萬劫

 

“지혜의 구름이 처음 대계에 일어날 적에/ 널리 먼지같은 물방울이 뿌려져 흩어지면/ 연못에 담긴 비가 된다.// 비가 내리고 그치니/ 고요하기가 상법과 같다.// 중생제도를 원하는 이 마음 만겁이다.”

도원(道園) 김홍집(金弘集, 1842~ 1896)이 찬한 우담유정(雨潭有定, 1786~1876) 선사의 영찬이다. 찬자 김홍집은 19세기 말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갑오농민전쟁을 수습하고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개화파의 거두(巨頭)이다. 김홍집은 긍담법정(亘潭法쎟)스님의 청으로 우담스님의 영찬을 짓게 됐다. 긍담스님은 우담스님의 제자로 스승이 입적하고 10년이 지난 후 찬문을 구하는 글을 김홍집에게 보냈다. 이에 관해 김홍집은 “양산의 우담스님은 법운·포운 두 선종의 적자이시니 계율을 행하고 참선하여 깨달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가풍이 있다네(梁山釋雨潭 爲法雲布雲 兩禪宗之嫡 傳戒行參悟 蔚有家風)”라며 자신이 영찬을 짓게된 이유를 밝혔다. 영찬의 연유와 찬문은 현재 통도사에 모셔진 우담스님 진영 한편에 그대로 적혀 있다.

김홍집이 언급한 법운과 포운의 적자란 뜻은 우담스님이 옹사인 용암혜언(龍巖慧彦)과 스승 포운윤취(布雲潤?)의 법맥을 계승했음을 의미한다. 우담스님은 5~6세 때 어머니에게 출가의 의사를 밝히고 당시 경성에 머물렀던 포운스님에게 의탁했다. 우담스님은 한자는 물론 범어와 경(經)·율(律)·논(論)·선(禪)에 이르는 모든 글을 한번 보면 외울 정도로 총명하여 일찍이 포운스님의 의발을 전수받았다. 20살에 통도사에서 법회를 열자 전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었으며, 당시 법문을 듣는 이 가운데 화승 용완(龍玩)은 붓을 버리고 강의에 들었다고 한다. 스님은 한동안 통도사 극락암에서 강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영취산 백련정사(白蓮精寺)에 선실(禪室)을 마련해 만일회(萬日會)를 주관했다. 이에 전국에서 스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수많은 선객(禪客)들이 모여들었으며 백련정사에서 수행하는 모습은 중국 여산(廬山) 백련결사(白蓮結社)에 비견될 정도로 성행을 이루었다.

1876년 여름에 스님이 입적하고 제자 계운창전(啓運敞典) 등은 천여 길을 달려 이조참판를 지낸 이용직(李容直)에게 비문을 청해 1879년에 통도사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10여 년 뒤 또 다른 제자 긍법스님은 당대 명사인 김홍집에게 영찬을 받아 스님의 진영에 올리면서 못다한 추모의 정을 다하였다.

[불교신문3188호/2016년3월26일자]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불교문화재연구소 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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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55 , 추천 : 0 , 작성일 : 2017-11-11 , IP : 220.79.22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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