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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운관진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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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千法界 遍布身雲  삼천대천 법계에 몸 구름 널리 퍼지니

華嚴說法 如雨如雲  화엄 설법은 비와 같고 구름 같아

度生以畢 寂滅之雲  중생을 제도해 마침은 적멸의 구름

寫眞一幅 万古山雲  진영 한 폭은 만고에 산과 구름이다.

해인사에 모셔진 화운관진(華雲觀眞, 19세기 후반 활동) 선사 진영에 실린 해명장선(海冥善, 19세기 말 활동)스님의 영찬이다. 해명스님은 화운스님의 문인(門人)으로 1883년 찬문을 지을 당시 해인사의 종사(宗師)로서 대적광전 삼신불도(1885) 조성 불사에 증사(證師)로 참여할 정도로 덕망이 높았다. 해명스님은 영찬에서 법호 ‘화운’의 운(雲)을 따서 법계를 감싸고 법우(法雨)를 뿌려 적멸을 이룬 만고의 산과 구름 같은 존재인 스님을 표현했다.

화운스님은 환성지안의 후손이자 호암체정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호암 문중은 해인사에서 여러 분파를 이루며 번성했으며 화운스님은 율봉청고(栗峯靑, 1738~1823)에서 금허법첨(錦虛法添), 용암혜언(龍岩慧彦, 1783~1841), 포운윤취(布雲潤聚) 등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율봉스님을 비롯해 용암, 포운스님은 교학에 해박했으며 특히 <화엄경>에 뛰어나 강론을 펼치면 전국에서 학인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또한 율봉 문중은 금강산과 인연이 깊어 율봉스님의 경우 금강산 마하연에서 <금강경>을 연구했으며 용암스님은 이곳에서 입적했다. 문중 어른에 비해 화운스님의 행적은 하동 쌍계사의 금당 중수기(1860년)에 적힌 법명을 제외하고 해인사에 모셔진 진영이 전부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스님의 진영에는 찬문과 나란히 “오십년을 와서 이룬 일 일생을 헛된 말이 길고 짧아 손을 드리우고 크게 웃으며 금강으로 가니 만이천봉의 달이 삼경이다(五十年來那事成 一生虛說短長聲 垂手大金剛去 萬二千峯月三更)”라는 임종게가 있다. 비록 스님에 관한 장문의 비문이나 행장은 전하지 않으나 이 짧은 영찬과 임종게만으로도 선대 스님들처럼 금강산에 뿌리를 두며 해인사에서 화엄강주로 활동했던 화운스님의 삶을 그려 볼 수 있다.

[불교신문3190호/2016년4월2일자]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불교문화재연구소 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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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20 , 추천 : 0 , 작성일 : 2017-11-11 , IP : 220.79.22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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