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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_()_

금우필기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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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隱之父 華雲之子 호은의 아버지요 화운의 아들이다.

能文而賢 有德之士 글 잘하는 어진이며 덕 있는 선비이다.

非佛之言 不敢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옳다고 하지 않고

非佛之心 不敢理 부처님 마음이 아니면 진리라 생각지 않았다.

智者之知物無已 지혜로운 이의 앎은 다함이 없고

無已之己無終始 다함이 없다는 것은 끝도 시작도 없다는 것이다.

肅寫傳神永留千禩 엄숙히 진영을 그려 영원히 천년에 머물게 하고

稽首拈香敬讚其美 머리 숙어 향을 사르고 그 아름다운을 기린다.

 

해인사에 모셔진 금우필기(錦雨弼基,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선사 진영에 실린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스님의 영찬이다. 진영에 적힌 영제의 용암직전(龍巖直傳)의 뜻 그대로 금우스님은 용암혜언(龍岩慧彦, 1783~1841)의 4세손이며 포운윤취(布雲潤聚)에서 화운관진(華雲觀眞)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금우스님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스승 화운스님의 진영처럼 대종사를 의미하는 부종수교(扶宗樹敎)가 영제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해인사에서 상당한 덕망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찬을 지은 경허스님은 근현대의 선종을 중흥시킨 대선사로 용암스님의 4세손이자 용암혜언-영월봉율(永月奉律)-만화보선(萬化普善)의 맥을 이었다. 경허스님은 은사인 계허(桂虛)스님의 추천으로 동학사의 만화스님에게 내전과 외전을 배웠다. 동학사에서 강사로 이름을 떨치던 중 전염병에 죽은 수많은 이들을 본 후 강원을 철폐하고 선 수행에 매진했다. 1899년 경허스님은 해인사에서 선원인 수선사(修禪社)를 창건하여 조당(祖堂)을 맡아 여름 안거를 위해 모인 선객을 이끌었다.

금우스님 영찬도 경허스님이 해인사 선원을 연 후 1901년에 지은 것이다. 두 스님은 용암스님을 조사로 하는 같은 문중 출신에 활동시기가 겹치는 것으로 보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찬에 특이하게 은사만이 아니라 제자인 호은문성(虎殷文性)을 언급했으며 어질고 현명한 스님의 성품을 사실감 있게 서술했다. 금우스님의 영찬은 경허스님의 유고집인 <경허집(鏡虛集)>에 수록되어 있다.

[불교신문3192호/2016년4월9일자]

 

해제=조계종 문화부장 정안스님  설명=불교문화재연구소 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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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30 , 추천 : 0 , 작성일 : 2017-11-11 , IP : 220.79.22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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