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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불자의 자세 (범어사- 홍민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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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불자의 자세 (범어사- 홍민스님<중앙승가대 교수>)

21세기는 그 미래가 장차 어떻게 전개될 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미 그 조짐들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지구는 1日 생활권으로 바뀌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곳에서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유럽의 광우병 파동이 부산의 식당가를 얼어붙게 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한편 정보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히게 하고 있다. 전달되는 정보는 유익하고 좋은 정보보다 저급하고 말초신경을 거스르는 정보의 양이 훨씬 더 많아 우리들의 삶을 어지럽고 혼탁하게 하고 있다.

자연환경 역시 병들고 찌들어져 가고 있다. 사막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북극은 물론 남극의 얼음도 녹기 시작하고 있다한다. 동시에 대기권의 오존층의 구멍이 자꾸 넓어지고 있다 한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자연의 황폐화는 그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도, 어떤 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불러온 재해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추구하는 무분별함과 자기나 자기 폐거리만의 이익추구에 대한 필연적인 과보인 것이다. 인과응보의 세계가 여실한 것이다.

인과응보는 연기법을 근거로 한다. 인과응보란 과학의 필연성이며,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당연성이고, 시간적으로 혹은 공간적 관계로 서로 얽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하는 緣起法의 세계인 것이다.

인과법이나 연기법은 善惡의 가치체계는 아니다. 그냥 법칙일 뿐이다. 스스로의 의지나 가치판단을 갖지 않으며 인간의 욕심이 그것들을 오염시키고 있을 뿐이다.

자연법에 순응하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약은 소견과 욕심으로 제한하거나 왜곡하지는 말라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부지런한 것은 흔히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시기나 도둑질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칭찬할 수 없는 것처럼, 부지런함 그 자체만으로 가치판단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처럼.
세존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남기신 가르침은 인과법 혹은 연기법을 이해하고 응용하라는 말씀은 결코 아니다. 나아가 인과를 바꾸거나 인연을 이용하는 길을 가르치신 것은 더욱 아니다. 신통이나 신비한 힘 같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진리는 많지만 인과로부터 자유스럽고 연기법으로부터 자유스러운 경지와 그 세계의 성취는 진리중의 바른 진리이며 가치중의 가치인 것이다. 그러한 경지와 진정한 자유의 세계를 피안이며 해탈이라 하셨다.

환경오염이라든가 정보의 홍수, 이들로 인한 사회의 혼탁함, 자연계의 질서파괴들, 이들은 인간이 저지른 것의 필연적인 과보이다. 사람에 의해서 무너진 것은 사람에 의해서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보조(普照 1158-1210)선사의 修心訣의 첫 구절이 “진흙에 넘어진 자 진흙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로 시작한다. 연기에 의한 인과의 세계는 피하려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눈덩이처럼 움직일수록 커지고 거미줄처럼 움직일수록 더 엉킬 뿐이다. 또 가만히 혹은 조용히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정신 없이 달려왔다. 우리가 그러했고 세계가 또 그러했다. 모든 재해의 근원이 사람일진대 그 문제의 해결점도 사람에게서, 우리들에서 찾아야 한다. 이 문제는 결국 인간존재의 근원적 물음에서 해답의 실마리는 풀린다.

세존은 열반에 드시기 전 시봉하는 아난의 물음에 “진실의 등을 밝히고 네 자신의 등을 밝혀라” 라고 유촉을 남기셨다. 깨달음의 진실한 등불을 밝히는 일. 네가 네 자신의 그 등불의 빛(밝음)을 밝히라고 하신 말씀, 21세기 이 혼탁하고 어두운 세계를 맑히는 길이며 불자의 사명이기도 한 것이다.
“自燈明 法燈明”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해야 할 일이다.

조회수 : 523 , 추천 : 3 , 작성일 : 2003-08-25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