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님의 법문,  뜻 깊은 좋은 말씀  깨침의 소리...

게지킴은 불자의 당연한 도리 - 보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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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스님
    1928년 경북 성주 출생
    1945년 해인사에서 구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1950년 해인사에서 상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
    1973년부터 1994년까지 송광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
    1991년 대만 불광산 계단교육 참학(존증사), 호계원 재심위원
    1997년 조계총림 제 5대 방장 취임
    대한불교조계종단일계단 수계산림 증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게지킴은 불자의 당연한 도리

 

“사람 몸 받은 인연 소중하게 여기고 성불각오로 공부”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은 “불교는 학문도 아니고 논설도 아니고 실천이 앞장서야 하는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스님은 율원 발전과 송광사 목우가풍 확립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광사(松廣寺)를 품고 있는 조계산 능선은 수도하는 승려를 상징하듯 곧곧한 소나무가 빽빽하여 가히 총림(叢林)의 사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흰 눈밭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 숲에서는 유난히 푸르름이 짙게 배어났다. 문득 ‘승(僧)이란 깨끗함이니라'라는 육조단경의 경구가 생각났다.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이 주석하는 삼일암은 대웅전 뒷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상사당(上舍堂)에 이르니 어느새 목련이 한껏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다. 봄이 멀잖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삼배를 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보성스님께서는 웃으시며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오늘 절에서 자고 가나”라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스님은 “절에서 예불도 드리고, 하룻밤 푹 쉬고 가라”며 먼저 찾아온 이의 마음을 편하게 다독여 주신다. 그리고는 나직히 말문을 여셨다.

 

“얼음 박빙이라. 내 마음이 빙판을 걷는 것 같아요. 옛날 태고 보우스님 밑에는 정몽주 이성계가 있었어요. 한사람은 고려 충신이고, 한사람은 나라를 세웠어요. 요새 사람들은 둘 다 좋다고 하겠지요. 알아서들 제 갈길 가고 있는데 무슨 얘기가 필요해요. 모두 개인의 욕심이 있어서 안되는 겁니다.”평소 소탈하면서도 자상하신 스님은 옛이야기를 빗대어 경책부터 하신다.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스님은 말을 이었다. “선방스님들은 24시간 함께 수행하면서 음식이 적으면 적은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같이 나눠먹는 마음이 있어요. 서로 함께 하려는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서로간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승단이 몇 사람의 뜻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율사로서 60년 가까이 생활을 해오신 스님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공무를 집행해야할 자리인 총무원 소임자에 도박전과가 있는 스님이 있다는 것에 격노하셔서 이런 말씀부터 하신 것이다. 승가의 위상이 무너질까 노심초사 하시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일까. (물의를 빚었던 성혜스님이 2월 5일 조계종 기획실장 자리를 물러났다.)

 

스님은 언제나 계율의 중요함을 강조하신다.

“사람이 오관으로 인한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것은 말로만 되는 일도 아니고 실천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거든요. 그래서 출가 사문에게는 몇 백가지의 계가 내려지고 재가자들에게는 오계가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항상 청정한 계를 몸에 지니고, 지혜를 기르고 마음을 한곳에 모아 안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로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三學)을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스님을 스님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계율입니다. 출가도 계를 받들어 지키겠다는 출발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계를 억지로 지키려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율이 무슨 논쟁할 거리냔 말입니다.

 

19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범어사에서 수계산림을 하는데 자격이 안되는 사미들이 있더라구요. 내가 모두 안된다고 했어요. 그 당사자들은 죽기살기로 용을 쓰면서 수계를 시켜주지 않으면 범어사에 불지르겠다는 공갈까지 하는 겁니다. 우선 사중에서 놀래면서 어떻게 선처를 바라는 분위기가 자못 감돌았어요. 나는 부처님 법계의 일인데 마지막 승단의 보루인 계율마저 문란해지면 안되겠더라구요. 법난이 따로 있답디까. 그래 단호하게 자격미달자를 모두 탈락시켰고 마침내 그들 모두 퇴방했어요. 그때 욕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잘했다는 소리 일색이었습니다. 승단의 마지막 보루는 계율입니다. 지계정신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서슬퍼런 지계정신이 살아있을 때 그것을 원동력으로 하여 정진과 해탈로 이어질수 있는 것입니다.”차를 한 모금 마신 스님은 최근 달라이 라마가 프랑스 불교열풍에 대해 경계한 것이 뭔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불교라는 말과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전통의식을 잘 간직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수 천년간 쌓아온 정신적 지주를 한순간에 버려버리고 유행처럼 번지는 사상에 몰입하는 현대인들의 단순성을 경고한 것이라고 부언했다. 스님의 말은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면면이 이어져온 청정한 수행풍토가 무너지고 있음을 경책하는 말씀으로 들렸다. 스님은 이어 며칠 전 부산에 다녀온 얘기를 하셨다.

 

“부산에 가면 용두산 공원이라는 데가 있어요. 그곳에 갔더니 성철스님 상좌가 탁발해다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어요. 아 그래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하는 말이 ‘우리 은사스님이 보시하라고 했어요.' 한단 말입니다. 그 가운데 ‘이 뭐꼬' 화두가 있다는 것을 아는게지요. 한가지라도 알뜰하게 배우고 수행해야 됩니다” 방장실에서 나와 뜰에 서 있으니 호남의 명산 조계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송광사 경내가 한꺼번에 다가왔다. 많은 유명 무명의 수행자들이 이곳에 찾아와 낮과 밤을 밝히며 수도하였고, 이곳에서 진리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객방에 짐을 풀고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저녁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스님들은 넓은 강당에서 한자리에 모여 바루공양을 하고, 재가자들은 공양간에서 공양을 했다. 누더기 장삼을 걸치고 작은 지팡이를 든 보성스님은 스님들의 공양하는 장면을 한번 둘러보시더니, 재가자들이 공양하는 곳으로 들어오셨다.

 

“절에 찾아온 불자들이 공양을 잘하도록 해야 한다”며 따뜻하게 한마디 하신다. 자상하신 스님의 면목을 살필 수 있었다.

 

저녁예불 후 땅거미가 내려앉자 상사당에는 송광사 행자들이 모두 모였다. 행자들은 스님에게 정중히 삼배의 예를 갖추고, 가지런히 앉았다. 보성스님은 행자들에게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상하게 물어보신다. 이어 행자들에게 초발심이 중요하다며 송광사가 조계산문을 연 뜻을 잘 새겨서 계율을 잘 지키며 생활하라고 강조하셨다. 승가상 정립은 행자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행자때 부터 사미 사미니 까지는 정말 구체적이고 기초적인 스님의 위의와 일상의례를 배워놔야만 하고, 그래야 구족계 보살계를 수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수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평소 생각이고 이렇게 행자들을 자상히 챙기신다. 엄격하면서도 개개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승풍. 송광사가 보조스님의 목우가풍을 면면히 이으며 청정승가의 표상이 되어 온 승보종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큰스님을 위시해 대중스님들이 ‘올바른 수행자상' 확립과 교육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길상사 선방에서 수행하는 덕조스님은 “방장 큰스님은 항상 생활 속의 계율을 후학들에게 일깨워주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신다”며 “방장스님은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수행자다운' 스님들을 매우 아끼신다. 송광사뿐 아니라 파계사 해인사 학인들이나 율사들을 대만의 율원에 보내 수계의식을 참관케 하고, 계율관련 외국서적을 구해와 전국의 율사스님들에게 보내주시는 등 한국 율원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다”고 말한다. 또 “직접 채소밭에 나가 막일도 마다하지 않으신다”며 “밭에 물을 주지 않는다든지 하면 소임자를 직접 불러 몽둥이를 드시는 엄한 분”이라고 보성스님의 평소 생활을 귀띔해 주셨다. 옛날 배고픈 시절 방장스님은 행자들에게 배고프면 언제나 먹을 것을 먹으라며 파격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며 자상함이 많으신 큰스님이시다고 회고하며, “다만 ‘음식을 돌아다니거나 서서는 먹지말라'고 하셨는데,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것이 계율에 바탕한 가르침임을 알았다”고 덕조스님은 덧붙였다.

 

며칠 후 서울에 오신 보성스님을 뵈었다. 방장스님은 4일 열린 광덕스님 열반 2주기 추모법회에 법문하기 위해 먼길을 오신 것이었다. 광덕스님과 스님은 도반으로 함께 수행하고 정진했던 특별한 인연을 갖고 계시기에 추모 2주기 법회에서 직접 법상에 오르셨다.

 

광덕스님이 언제 사바세계에 왔다가 언제 갔는고.

해천명월초생처(海天明月初生處)요,

암수제원정효헐시(岩峀啼猿正歇時)로다.

 

(바다 하늘에 밝은 달이 처음 뜨는 곳이요,

바위산의 원숭이가 울음을 그칠 때라)

 

풍송단원귀령거(風送斷雲歸嶺去)하고,

월화류수과교래(月和流水過橋來)로다.

 

(바람이 보낸 조각구름은 산마루를 돌아가고,

달빛싣고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네)

 

이렇게 읖으신 스님은 대중들에게 “광덕선사가 열반했다고 하면 단견(斷見)에 떨어질 것이요, 열반하지 않았다고 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질 것입니다. 대중이 알아 듣고 못알아듣고는 상관없이 광덕선사는 무쇠소를 거꾸로 타고 수미산에 올라, 구멍없는 피리로 시간밖에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선사는 깨끗함이 눈처럼 희고, 법의 눈이 둥글고 밝았으며, 종단을 위해 진력하시고, 자비로 많은 사람들을 제도했으니 그 공덕을 논하려면 바다같이 큰 입으로도 말하기 힘들것입니다” 라며 광덕스님의 뜻을 기렸다.

 

이어 스님은 불광사 법당을 가득채운 불자들에게 나직하지만 간곡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라”고 강조하셨다. “여러분들은 참 좋은 인연 만났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몸은 부모로 인해 얻었지만 불법은 어떻게 만났는지를 상기하셔서 정신 바짝 차리고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맹구우목처럼 불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한가지라도 실천하도록 하세요. 이 조그만 대한민국과 지구촌아래서 작게만 생각하지 말고 크게 나래를 펼쳐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해요. 부처님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안과 밖이 맞아야 합니다. 네 주장자 내 주장자 따지지 말고 부처님 제자로 크게 생각하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불교는 학문도 아니고 논설도 아니고 실천이 앞서야 하는 수행”이라는 것이 보성스님의 평소 신념이다. 사람 몸 받고 나온 금생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불의 각오로 열심히 수행하라는 것이다.

조회수 : 851 , 추천 : 2 , 작성일 : 2005-03-20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