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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주관 객관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주관이 먼저인가 객관이 먼저인가 묻는다.
혹자는 주객이 들시라고 말한다. 깨치고
말하면 맞는 말이요 모르고
말하면 그 말은 이 몸이 태어나기 이전의 나를 전혀 무시한 말이다.
몸이 죽으면 마음도 따라서 죽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몸이 죽을 때 마음도 따라 죽는다면
단멸에 떨어진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몸에 얽매여서 한치도 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그 사람은
꿈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꿈은 이 몸을 떠나는 작용이다.
혹자는 주객을
나눌 수 없다고 말한다. 비유하면 닭이 먼전냐 달걀이 먼저냐는 말과
같다고 한다. 그와 같은 말은 환상에 얽혀 사는 사람의 말이다. 왜냐하면 닭도
알도 둘 다 물질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객관이 먼저라 한다. 그 사람도 물질의 환상을 주체로 착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에 속박되어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상실한 동물세계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도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기도 하고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그들한테서는
예의와 도덕 같은 것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전혀 알 바가 아니다.
혹자는 주관이 먼저라고 한다. 그 사람은
현상계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용할 줄 알고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으며
또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
주관에서 볼 때에 이 몸과 대지와 세계
인류가 같은가 다른가 묻고 싶다. 이 몸이 地 .水. 火. .風으로 구성되고
세계도 地.水.火.風 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세계도 인류도 모든 동물도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곧 대아(大我)이다. 그러니 세계의 어느 부분도
떼어 내버릴 수 는 없다.
결코 남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인
나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아(大我)는 곧 무아(無我)이다.
그러면 소아(小我)는 어떤
것인가?
육.칠척에 불과한 이 육신만이 나이고 그 밖의 것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으로
생각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만이 내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재산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하더라도 빈궁함을 면할 도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천만인 속에 있어도 고독감을 면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남이요 나는 일개의 자기 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경지(境地)에서 생활할 것인가 물으면 누구나 대아(大我)경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말한다.
대아(大我)경지에서 외계를 관찰할 대에는
남녀 차별도 노소도 생사도 열반도 종교도 원근도 선악도 시비도 극락도
천당도 사바도 일체 차별의식이 끊어진 진성의 세계이다.
흔히
불상을
우상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신을 모르는 말이며 우주의 대진리를
모르는 우인의 말이다. 자기자신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자인줄
알았다면
자살행위와 같은 우범을 저지르지 않고 자아발견을 위해 정진할 것이다.
세계도 인류도 유정무정도 우주 만유가 모두 자신인데 그 세계에 조물주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을 지배하는 자성이 바로 진아 이며 조물주이다.
송광사
정원에 고향수(枯香樹)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안내판에 이렇게 씌어있다. 아성여생(我生汝生)
하고 아사여사(我死汝死)라. 내가 살면 너도 살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그런데
이 글이 와전되어서, 보조국사가 다시 살아나면 고향수도 살아나는 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다 자성을 발견할 때에 자기자신이 생사를
초월하면 우주 만유가 동시에 생사를 해탈하기 댸문에 내가 살면 너도
산다 (我生汝生)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미시(迷時)에는 주객(主客)이 분리되고 오시(悟時)에는
주객(主客)을 초월하여 격외인(格外人)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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