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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욕심과 낙욕성(樂欲性)은 구별해야 - 탄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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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욕심과 낙욕성(樂欲性)은 구별해야 - 탄허스님


세상욕심이 희박한 이는 좋은 사람이지만 낙욕성(樂欲性)이 없는 사람은 천치, 바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양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저의 선고(先考)께서 17세부터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정치문제를 가지고 저를 가르쳤습니다. 제가 17~18세가 되었을 때 선고(先考)께 “소강절(邵康節)은 소인(小人)입니까, 군자(君子)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송조(宋朝) 육군자(六君子) 중의 한 분이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또 말씀드리기를 “그러면 그의 학설이 거짓말이 아니겠지요” 하고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오종(五種)사업의 종별(種別)을 들어 “영위계구(寧爲鷄口)이언정 무위우후(無爲牛後=작아도 닭의 입이 되는 것이 낫지 커다란 소 궁둥이가 되지 말라는 뜻)라는 말이 있듯이 가다가 못 갈지언정 공자(孔子)의 불세지사업(不世之事業)을 따르겠습니다”고 하니, 선고(先考)께서도 막지 못하셨습니다. 이처럼 낙욕성(樂欲性)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보통 세상사람들은 물질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정신을 제이의(第二義)로 삼는 데서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물질을 제이의(第二義)로 삼아 정신과 물질을 조화시키는 데서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권력자나 갑부는 고통이 없어야 하겠는데, 그들 역시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정신적인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이 아니면 균(微菌)을 볼 수 없고 망원경이 아니면 원거리(遠距離)를 볼 수 없듯, 인간의 죄악상(罪惡相)은 성인(聖人)의 경전(經典)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경전을 보아 자기의 주체성을 믿고 거기에 따라서 생활해야 합니다.
고해중생(苦海衆生)을 건지기 위해 상․중․하(上․中․下)의 그물을 쳐 놓은 것이 불교의 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근대지중생(上根大智衆生)을 건지기 위해서는 고래를 잡는 그물, 중근기(中根機)를 건지기 위해서는 대구나 명태를 잡는 그물, 하근기(下根機)를 위해서는 멸치나 새우를 잡는 그물을 쳐서 한 중생도 남김 없이 다 제도(濟度)하려는 것이 불타(佛陀)의 원력(願力)입니다.

상근기(上根機)는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바로 참선을 통해 도(道)에 들어가고, 중근기(中根機)는 교리적으로 문자에 의지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 삼관일심(三觀一心)의 도리인 관법(觀法)으로 도(道)에 들어가며, 하근기(下根機)는 참선(參禪)에도 교리에도 해당되지 못하므로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등의 명호(名號)를 외거나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같은 주력(呪力)으로 도(道)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처럼 입산수도(入山修道)를 해야만 도(道)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근기(根機)에 따라 상,중,하(上,中,下) 어느 문호(門戶)든지 알맞게 택하여 수시수처(隨時隧處)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밤새도록 가는 길에 해 돋을 때가 오는 것이지요. 비록 도(道)에 들어가는 문이 상중하(上中下)의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들어가고 보면 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古人)의 말씀에 “발심(發心)은 유선후(有先後)어니와 오도(悟道)는 무선후(無先後)” 라, 즉 발심(發心)은 선후(先後)가 있을지라도 도(道)를 깨닫는 데는 앞뒤가 없다 했습니다.

출처 : 탄허스님 홈페이지 (www.tanheo.com)

 

 

조회수 : 3482 , 추천 : 9 , 작성일 : 2008-08-05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