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님의 법문,  뜻 깊은 좋은 말씀  깨침의 소리...

손가락을 보지말고 달을 보아야.. 도선스님/해인사 선원 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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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의 근본교의 “손
가락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 팔만대장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손가락을 아무리 깨물어도 달은 나오지 않으며, 손가락을 의지해 달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취임 1백일을 맞아 ‘간화선 중심의 수행풍토 확립’을 최우선 종책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신라말 구산선문의 도입 이후 선교일치의 수행풍토를 확립해 왔다. 특히 화두참구를 중심으로 한 간화선 전통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수행가풍을 형성해 왔다. 출가 이후 해인사에서만 30안거를 성만한 해인선원 선덕 도선스님에게서 선불교의 근본교의에 대해 법문을 청했다. 팔만대장경 속에서 불법(佛法)을 찾는 것은 얼음 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는 모두 오심득도(悟心得道)한 것이지 문자나 언설(言說) 속에서 불법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팔만대장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손가락을 아무리 깨물어도 달이 나오지 않으며, 손가락을 의지해 달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부처님의 오도(悟道) 자체가 경전이나 문자, 언설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지해 마음을 깨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아난존자의 머리는 현대적으로 얘기하면 마치 녹음기와 같아서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외우고 있었습니다. 아난존자는 이처럼 이 그릇의 물을 저 그릇에 담는 것과 같이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을 모두 외우고 있었지만, 결국은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하자, 아난존자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는 부처님께서 언제나 계셔서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난이 슬피울며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면 되겠사옵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 내 정법(正法)은 이미 가섭에게 전해주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필발라국에서 가섭존자를 중심으로 5백 성현이 모여 제1결집(結集)과 제2결집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외우고 있는 아난존자를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당에 아난존자가 들어서자마자 가섭존자는 갑자기 아난을 다음과 같이 회되게 꾸짖고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사자굴 속에는 여우새끼가 필요없다. 여기는 성현들만 모여 있으니 네가 아무리 법문을 잘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마치 부모님이 자식을 꾸짖어 가르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엉겹결에 쫓겨난 아난존자는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가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일주일만을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제서야 사형인 가섭존자의 은혜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다시 결집장으로 향했고, 가섭존자는 아난을 반갑게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모든 경전은 요즈음 학자나 논문같이 상(相)을 내지 않고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라는 겸손한 표현으로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불법의 생명선은 깨침에 있으며, 팔만대장경을 다 외워도 죽으면 결국 무망한 것입니다. 본래 부처님과 아난존자는 전생에 같이 수행하는 도반이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늘 참선을 통해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드셨고, 아난은 총명해 늘 문자에만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억천만어(億千萬語) 법문(法門)을 외우는 것보다 잠깐동안이나마 참선하는 것이 낫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팔만장경(八萬藏經)으로서 눈 밝은 도인을 구하는 것은 ‘비상(극약)’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바른 믿음(正信)과 삿된 믿음(邪信)의 차이는 오직 내 마음 하나만 믿고 의지하는가, 아니면 마음 외에 상대방을 의지하는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불교의 철칙은 ‘오직 내 마음을 닦아서 아는 것(식인견성, 識人見成)’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꽃이 피고 중국에서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에 있어 대표적인 교종(敎宗)은 화엄종, 천태종, 법상종, 유식종이 있었는데, 화엄종은 두선 현수대사 등 6대조를 넘지 못했고, 천태종도 천태지자대사 이후 얼마 안갔으며, 법상종 또한 현장대사 이후 3대를 넘지 못했으니, 유식종도 같은 형편이었습니다. 교종은 이처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즉 문자나 교설에만 의지했기 때문에 깨달은 도인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 선종(禪宗)은 마음을 믿고 식인견성(識人見成)한 도인이 끊이지 않고 속속 배출되었기 때문에 찬란한 법등(法燈)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6조 혜능(慧能)대사는 일자무식이었으나 무상의 깨달음을 얻어 법손(法孫)이 천하를 덮었고, 우리나라 역시 유구한 선종법맥을 전승해 오고 있습니다. 선종의 각 파로는 임제종,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 위앙종 5개 종단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임제종이 많은 선사들을 배출하고 오랫동안 법맥을 이어 왔습니다. 참선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초발심(初發心)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처음 마음먹은 결심을 한시도 잊지 않고 아주 간절하게 간직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장소를 가던 초발심을 견지하면서, 매사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용맹정진 하면 궁극에는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회수 : 1252 , 추천 : 4 , 작성일 : 2003-12-07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