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는 유무(有無)가 아니나 유무(有無)에 통하고, 본(本)은 고금(古今)이 없으나 고금(古今)에 통하는 것이 도(道) 이다. 유무(有無)는 성정(性情)을 인한 것이요. 고금(古今)은 생사(生死)에 인한 것이다.
성(性)은 본래 정(情)이 없다. 성이 미(迷)하여 정(情)이 생긴다. 정(情)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생각이 변하면 체와 달라진다. 만상이 만들어지게 되고, 생사(生死)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개 정에는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고, 착함과 악함이 있다.
맑고 선함은 성인으로 일어나지만, 더럽고 악한 것은 범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까닭을 잘 알아야 한다. 정(情)이 생기지 않을 것 같으면 범부도 성인도 다 일어나지 않는다.
보살은 성품을 비록 이미 깨달았으나 정은 오히려 다하지 못함이 있다. 까닭에 ‘깨달은 유정(覺有情)’이라 부른다. 보살(菩薩)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나머지 이승이겠는가. 삼승(三乘)도 오히려 그러한데 나머지 인천(人天)과 이류(異類)이겠는가?
부처님은 깨달아 원만하여 지혜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청정함이 지극하여 정에 얽힘이 이미 다했다. 때문에 정이라는 말을 부처님에게 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모두 ‘유정(有情)’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함허(函虛) : 기화(己和, 1376년 ~ 1431년)는 조선 전기의 승려이다. 속성은 유(劉)씨이며, 본관은 충주이다. 호는 함허(涵虛), 득통(得通), 무준(無準)이다. 저서로는 현정론(顯正論)· 원각경소(圓覺經疏)·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設宜)· 함허당어록(涵虛堂語錄), 등이 있다.
소이(所以) : 어떤 일을 하게 된 이유.
유정(有情) : 마음이 있는 중생.
보살(菩薩) : 깨달을 중생.
이승(二承) : 석존의 음성을 들은 제자인 성문승과 부처님의 교화에 의하지 않고 홀로 깨달아 자유경에 도달한 성자를 연각승이라고 한다. 이승(二乘)은 이 성문승과 연각승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삼승(三乘) :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3승이 있다.
인천(人天) : 인간계와 천상계.
삼승(三乘)과 오승(五乘)은 모두 정(情)을 다스리는 것이다. 인천승은 더러운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고, 삼승은 깨끗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더럽고 깨끗한 번뇌가 다한 뒤에 비로소 대각의 경지에 이룰 수 있다.
오계는 인도(人道)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십선(十善)은 천도(天道)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사제(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은 이승(二承)을 이루게 하는 것이고, 육바라밀(六波羅密)은 보살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가만히 삼장이 가리키는 것을 드려다 보면, 오로지 사람들로 하여금 정을 버리고 성(性)을 드러나게 할 뿐이다. 정이 성에서 생기는 것이 마치 구름이 넓은 하늘에서 생기는 것과 같다. 정을 버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마치 구름이 걷히면 크고 맑은 하늘이 나타나는 것과 갔다.
정이 엷게 있는 이와 두텁게 있는 이가 있다. 이는 구름이 묽은 것이 있고 짙은 것이 있는 것과 같다. 구름에 짙고 묽음의 다름이 있지만 하늘의 광명을 가리는 것은 하나이다. 정에 두텁고 엷음의 다름이 있으나 성품의 밝음을 장애하는 것은 같다. 구름이 일어나면 해와 달이 빛을 거두어 천하가 어둡고 구름이 사라지면 대천세계를 비추어 우주가 확연하다.
*오승(五乘) : 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등이다.
오계(五戒) : 불교에서 5가지 행위규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등이다.
십선(十善) : 10가지 좋은 일. 십선도(十善道) 또는 십선계(十善戒)라고도 한다.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 불탐욕(不貪欲), 불진에(不瞋?), 불사견(不邪見).
사제(四諦) :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진리.
십이인연(十二因緣) : 12가지 인연, 곧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의 연기관계.
절관(竊觀) : 남모르게 가만히 살펴 봄.
지귀(指歸) : 많은 사람의 마음이 쏠리는 곳 많은 사람이 숭배하는 사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에 비유하면 맑은 바람이 뜬 구름을 쓸어 내는 것과 같다. 보이는 것이 확연(廓然) 하고자 하면서 맑은 바람을 싫어하는 이는 어리석은 것이며, 자타(自他)가 맑고 태평하기를 바라면서 나의 불교를 싫어하는 이는 잘못되었다. 만약 사람 사람마다 이를 의지해서 수행하면 마음에 진실을 얻어 바르게 되고, 몸을 참답게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있고, 국가를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다.
근기가 빼어난 사람은 보살이 될 수 있고, 성문이 될 수 있고, 연각이 될 수 있지만, 근기가 하열한 사람은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참으로 이와 같아서 세상에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죄의 과보를 싫어하면 응당히 모든 악을 끊어야 한다. 모든 악을 다 끊지 못하더라도 족히 한 가지 악은 제거하여야 한다. 한 가지 악을 제거하면 한 형벌이 멈춘다. 한 가지 형벌이 한 집에서 멈추면 만 가지 형벌이 국가에서 멈춘다. 복된 인연을 좋아한다면 응당히 모든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한다. 모든 선한 일을 다 행하지 못하더라도 족히 한 가지 착한 일을 행하여야 한다. 한 가지 착한 일을 행하면 한 가지 기쁜 일을 얻는다. 한 가지 기쁜 일이 한 집안에서 일어나면 만 가지 기쁜 일이 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다.
*확연(廓然) : 널찍한 모습. 펼쳐진 모습
가이(可以) : …할 수 있다. 좋다. 괜찮다. …해도 좋다.
가득(可得) : 지각되다. 인식되다.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다. 본래 근기가 가장 낮은 이를 위해 설파한 것이다. 진실로 이를 능히 행하면 자신이 성실하게 되고 만족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물며 사제와 12인연이겠는가? 하물며 육바라밀이겠는가?
유교는 오상(五常)으로 도추(道樞)를 삼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계(五戒)가 곧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이다. 산목숨을 죽이지 않는(不殺生) 것은 인(仁)이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不偸盜) 것은 의(義)이고, 올바르지 않는 정을 통하지 않는(不邪淫) 것은 예(禮)이며, 술을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시는(不飮酒) 것은 지(智)이며, 허망한 말을 하지 않는(不妄語) 것은 신(信)이다.
다만 유교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덕행으로 하지 않고 곧 정치와 형벌을 쓴다. 까닭에 말하기를 “정사(政事)로써 인도(引導)하고, 형벌(刑罰)로써 구재(救齋)하면 백성이 면하고자 하나 부끄러움이 없고,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구재하면 부끄러워하고 또한 품격이 있다”고 하였다.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를 써서 구재하는 것은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까닭에 말하기를 “침묵 하여도 그것이 이루어지고,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은 덕행에 있다” 하였다. 정사(政事)로 인도하고 형벌(刑罰)로 구재함은 상벌(賞罰)을 면할 수 없다. 까닭에 “상벌(賞罰)은 국가의 큰 권력이라” 하였다.
*사제(四諦) :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 진리를 의미하는 불교교리.
십이인연(十二因緣) : 과거의 지은 업에 따라서 현재의 과보를 받으며 현재의 업을 따라서 미래의 고를 받는 12가지 인연, 곧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의 연기관계.
육바라밀(六波羅密) :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 지계바라밀(持戒波羅密).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 선정바라밀(禪定波羅密). 지혜바라밀(智慧波羅密) 이다.
도추(道樞) : 사물의 상대적인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인 도의 경지
정형(政刑) : 정치와 형벌.
대병(大柄) : 국가 통치 권력.
침묵 하여도 이루어지고 말하지 않아도 믿는 것은 오로지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 이다. 겸하여 인과(因果)로 이를 보이셨다. 상벌로 보이면 어쩌다 면전(面前)에서 복종할 뿐이지만, 인과로 보이면 복종(服從) 하기를 마음으로 복종한다. 지금 세상에서도 그러함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상을 주어 권하고 벌을 주어 금하게 하여 악을 그치면, 악한 이는 그 위엄이 두려워 그치게 되고, 착한 이는 그 상이 이로움이 되기 때문 이다. 까닭에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면전(面前)에서만 복종 할 뿐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사람들의 지금의 궁핍하고 영달한 까닭을 알고자 하면 곧 숙세에 업의 씨앗을 보여 주고, 후세의 화와 복을 알고자 하거든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이 원인이 되는 것을 보여 주면, 곧 영달한 이는 전생에 심은 선근을 기뻐하며 더욱 부지런히 할 것이고, 궁핍한 이는 전생에 선근을 닦지 아니한 것을 참회하며 스스로 힘쓸 것이다.
또 후세에 복을 받으려는 이는 선(善)을 위해 힘쓰고, 후세에 재화를 피하려는 이는 반드시 악행을 일삼는 것을 삼가 할 것이다. 이는 곧 복종하지 않으면 그 뿐이지만, 복종을 하다면 마음으로 복종하지 오히려 면전(面前)에서만 복종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면종(面從) :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만 순종함.
하측(何則) : 왜 그러한가.
요복(邀福) : 복을 빔.
자자(孜孜) : 부지런하다. 주시하다. 내심 기뻐하다. 근면하다
비록 그러하기는 하나 어떻게 사람 사람을 모두 마음으로만 복종 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못한 이는 먼저 상벌로 인도하여 점차적으로 마음을 기뻐지게 하여 진실로 복종하게 하여야 한다. 까닭에 인과를 보여주는 것 밖에 또한 상벌의 가르침을 두었다. 이른바 “응당히 섭수(攝受)할 것은 섭수하고 응당히 절복(折服) 시킬 것은 절복(折服) 시킨다.”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유교(儒敎)와도 가까우나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에서 모두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처님이 장차 열반에 드실 때에 그 법을 임금에게 부촉하시고 신하들에게 부촉하셨다. 이는 도(道)로써 천하를 인도하고 세상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자 함이며, 모두 진리를 닦는 길을 밟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재가(在家)와 출가(出家)를 논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도에 맞게 쓰기를 바랄 뿐이다. 반드시 머리를 깎고 옷을 달리한 뒤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말하기를 “방편에 따라 결박(結縛)을 풀어주는 것을 이름 붙여 삼매라 한다.”고 하였고, 또“정해진 법이 있지 않는 것을 아뇩보리(阿耨菩提)라 이름 한다” 하였다.
부처님 마음은 이와 같다. 어찌 소통(小通)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만약 참는 힘이 없는 이라면 육진에 머물면서 물들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도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까닭에 사람들에게 출가하여 멀리 떠나 수행하기를 가르치신 것이다.
*침침(駸駸) : 차츰 차츰. 속력이 매우 빠르게. 빨라지는 모양.
수방해박가명삼매(隨方解縛假名三昧) 육조단경 하권.
무유정법명아뇩보리(無有定法名阿耨菩提) 금강경 제7 무득무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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