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 창학을 위한 동문들의 모임
88년 봄 동국대학교 대학원 강의를 들으려고 개운사에 들려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이 남아 승가대학 발전을 위한 동문회 간담회에 참석했다. 대원암에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다. 많은 동문들이 모여 승가대학 발전을 위한 동문들의 역할과 기여 부분을 이야기를 하면서 동문 회칙이 개정되기도 했다. 한 조항에서 내가 일어나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 이라고 했고 격론 끝에 회의는 끝이 났다. 동대 대학원 강의를 듣고 원주로 갔다.(?)
동국대학교에서는 강원을 졸업한 스님들에게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수 과정을 열어 놓고 있었다. 면접에서 김용정 교수는 “왜 대학원 강의를 지원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나는 “학문의 궁핍함과 논리의 부실을 채우고 싶어 지원했으며, 해인 강원(75년)에서 김용정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사실이 있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 철학을 수강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의 거처는 원주 둔내면 들녘에 있는 작은 집이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던 차에 미국이민을 준비하던 보살님이 빈집이 있으니 필요하면 쓰라고 해서 임시로 머물게 된 곳이다. 수업이 있어 강의를 들어야 하는 날에는 개운사 식당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어느 날 둔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 역에서 내려 개운사에 들려 점심을 때우는데 일전에 회의 석상에서 회칙 개정으로 부딪쳤던 스님이 나에게 다가와 승가대학 소임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스님과는 동문회 회의장에서 처음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럴 일 없다”라고 했다. 그 스님은 “지금 소임을 새로 짜서 모인 스님들은 모두 처음 보고 만난 스님들이며, 승가대학 발전을 위해 새로 시작하는 의미를 갖고 함께하고 있다.”라고 했다. 소임자들의 면면을 보니 이혜성 학장스님을 비롯해 임시 법인처장에 성문스님, 국장에 수완스님, 기획실에 기획국장 금정스님, 교학처에 교무국장 원해스님, 학생국장겸 사감에 정안, 비구니 사감에 00스님 총무처장 개운사 주지 범산스님 등으로 짜여 있었다. 그러니 내가 맡을 직책은 학생국장겸 사감이었다.
말이 거창해 승가대학 2차 창학과 지속적 발전을 위해 새로 시작하는 의미를 갖고 함께하는 동문이지 기실 운영 자산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전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 뻔해 보이는 곳이다. 우리가 승가대학을 다닐때에도 종단에서 운영비를 도와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투쟁도 하고 점거 농성도 했다. 가까스로 학생들이 화주하고 소임자들이 화주하고 뜻있는 스님들이 도와주고 이해하는 신도들이 함께 시주해 지금까지 겨우겨우 지속되고 있는 학교였다. 그런 학교 운영상태가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 없었다. 까닭에 나는 은사스님께 “제가 학교 소임을 보게 되었으니 스님께서 평소 후학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만큼 작은 성의라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봉은사를 교육 지원 사찰로
고난은 지속적인 고통을 주었다. 당시 강남 봉은사 주지는 변밀운스님 이였고, 조계종 총무원장으로는 서의현스님이셨다. 종로의 총무원을 강북 총무원이라 부르고, 봉은사를 강남 총무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로 간의 완력이 심했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강남 총무원은 돈의 지배력이 강할 뿐 이렇다 할 권력을 행사할 것이 없고, 조계종 총무원에서 막강한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둘은 서로를 헐뜯으며 마주 보고 달리는 고장 난 기차처럼 달리고 있었다.
88년도 4월의 끝자락 즈음에 학장 이혜성스님과 이성문스님이 월요회의 석상에서 “강남 봉은사를 정리해 봉은사로 들어오는 재정 일체를 승가대학 교육 지원금으로 쓰라는 서의현 총무원장의 확언을 받았다.”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모두들 대리 싸움을 하라는 것 아니냐고 놀라면서도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야 봉은사 같은 재정 지원 사찰이 생기겠느냐고도 했다. 한쪽에서는 잘만하면 종단 문제도 해결하고 승가대학 재정 지원도 해결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라고도 했다. 논쟁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오월 어느 날 성문스님이 사감인 나에게 “학생들을 동원하면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고 해서, 나는 “학교 발전을 위하고 학교 재정확보를 위하는 일이고 재정확보는 곧 학생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일인데 누구 하나 빠지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전체 동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다시 월요일이 오고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입성 방법이었다. 폭력과 평화주의가 양립한 것이다. 즉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누어져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측과 폭력 없이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떻게 평화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체 학교 대중이 가사장삼을 수하고 목탁을 치며 여법하게 일주문으로 들어가 법당에서 성취될 때까지 기도를 하자”는 비둘기파와, “돈이 들더라도 집 달리를 사서 하루에 쓸어버리면 끝이다.”라고 하는 매파의 주장이 양립되어 있었다. 학생회에서도 반대 여론이 극심했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갔다. 성문스님은 “혹 모르는 일이니 최정예 몇 사람이라도 묶어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하여 나는 당시 4학년에 다니고 있는 사제인 정인스님을 불렀다. 정인스님에게 여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혹 모르는 일이니 애교심이 강한 학생으로 각 학년에 몇몇씩을 정예요원으로 선별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정인스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결정은 더디고 일의 사안은 화급하게 되었다. 유월 초에 들어서면서 나는 성문스님께 6월 25일이면 방학을 하게 되는데 방학 이후는 한 명의 학인스님도 동원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성문스님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후 잠잠하기에 추진하지 않는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6월 23일 저녁 열시가 넘었다. 급작스럽게 상황이 변했다. 오늘 저녁 그러니까 내일 새벽이 D-day란다. 집달리를 앞세워 들어가는 것으로 학생은 몇 명이나 함께하느냐고 해서 이제 전달해야 한다고 하고 사제를 불러 내일 새벽에 거사가 시작되는데 집달리가 앞서고 우리가 뒤를 따를 것이라 했다. 새벽이 되어서 함께하는 학생들을 살펴보니 3월에 입학한 1학년이 전부였다. 학년 별로 한 명씩도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사제는 이 상황이 최선이라고 했다. 내가 느낀 것은 전체 동원은 불가하다 하더라도 학년별 지지자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2,3,4학년 가운데는 한 명도 없으니 이는 지지받지 못한 일임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뒤의 일은 차후에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그 새벽에 봉은사 진여문 앞에 다다르니 새벽인데도 불이 환히 밝혀 대낮 같았다. 안에서는 문을 굳게 닫았고, 돌이 날아들고 저항을 했지만, 한바탕 고함 소리에 시끄럽더니 문이 열리고 대웅전 법당 앞에 이르렀다. 새벽이라 예불하러 온 신도들은 놀라는 모습이고 저녁부터 지키고 있던 밀운스님 지지자들은 우리를 보고 악을 쓰고 꾸짖고 헐뜯으며 험담으로 일괄했다. 밀운스님은 급히 빠져나가고 없었다. 우리 쪽의 봉은사 입성을 보고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내일모레면 방학으로 학생들의 반응과 학생 회장단을 만나 함께해서 빨리 끝내자고 해야 했다. 회장단과는 괴리가 있었다. 학생회장단에서는 함께하기는커녕 데리고 들어간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들을 하루 빨리 학교로 돌려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은 학교 발전과 교육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참한 것으로 돌려보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또 내일이면 방학인데 어디로 간단 말이야. 함께하지 아니한 2,3,4학년 스님들을 설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재삼 이야기를 했다. 벽은 분명했고 양분된 상태는 확실했다. 그날따라 은사스님께서 승가대학에 대중공양을 오셨다. 점심이 못 되어 바쁜 걸음으로 식당채를 나서는데 은사스님께서 들어오고 계시기에 나는 “어찌된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다. 은사스님께선 웃으시면서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신도님들과 함께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예 오신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난감했다. 생각 끝에 현 상황을 말씀드리고 “일이 터져 대중은 흩어지고 사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약수암으로 되돌아가셨다. 나는 기숙사 숙소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 사무실에서 삼일을 지새웠고 학생회장단과의 괴리는 그들이 졸업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나는 삼일 만에 봉은사에 들어갔다. 봉은사에 들어갔더니 성문스님은 없었다. 삼일 전 입성 당일에 광분하는 신도들을 달래려고 나섰다가 옷자락이 붙잡혀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못 나온다는 것이었다. 원해스님이 강남경찰서에 갔다 오더니 누군가 성문스님 대신 들어오면 성문스님을 내보내 주겠다고 했다면서, 본인이 들어가고 성문스님을 내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거짓이니 속지 말고 기다리자고 했으나 원해스님이 극구 들어가더니 둘 다 검찰로 넘겨졌다. 우리는 김진태 검사실에서 포승줄에 묶인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추진하던 사람이 없어졌으니 모든 일은 답보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팡이 끝에 칼을 묶어 두었다. 밤이면 몽둥이와 칼을 들고 순번으로 불침번을 서고 순환하며, 낮이면 예불과 기도 정진을 해야 했다. 날짜가 지날수록 깡패들의 연수원이 되어갔다. 앞에 들어왔던 깡패들이 뒤에 들어올 깡패들과 야합하여 교환식 침입과 침범을 일삼으며 그들 스스로의 가치를 높였다. 그러니 일명 호위한다는 깡패들에게 지급할 재정도 동이 나고 충당할 방법도 아득했다. 하루는 총무원 청사에 근무하는 사서실장이 도우러 왔다가 무게를 잡는 바람에 깡패들에게 예리한 칼끝에 억압당하는 꼴도 당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나이 어린 깡패를 식당에서 몇 번을 마주쳤다. 그는 매번 밥을 냉면 그릇에 가득 담아 끼니마다 밥을 남겼다. 하루는 마주 앉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깡패 두목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깡패 두목은 혼자 하냐고 하니 또 부하들이 많습니다.라고 하길래 나는 그를 바라보며 “그래, 깡패 두목이 되면 부하들 하나하나의 성격과 행동을 파악하겠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또 “예 그렇게 하지요.”라고 답을 했다. 그 얘기 끝에 “깡패 두목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자기가 먹는 음식량도 모르고서야 깡패 두목이 되겠냐.”고 했더니 애가 머쓱해했다. 내가 다시 “밥은 많이 있고 시간도 많다. 밥을 먹을 때에는 밥을 알맞게 퍼서 먹다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조금 더 퍼다 먹으면 남기는 음식이 작아지지 않겠느냐. 적어도 깡패 두목이 되기 전에 자기의 음식 양부터 알아야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후 그는 밥을 남기지 않았다.
6월23일에 봉은사에 들어와서 한 달이 지나니 18만원의 월급을 주기에 모두다 봉은사 재정에 보태라고 그대로 반납했다. 48일이 지났다. 우리는 모여 앉았다. 모두가 말하기를 이런 형태로는 교육지원 도량은 커녕 재정의 궁핍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날이 새면 이혜성 학장스님께 말씀드리고 환지본처 하자고 합의를 했다. 늦게야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멀리서부터 부산한 말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범산스님이 우리 침소 앞을 내달리면서 쳐들어왔어, 쳐들어왔어. 하는 두 마디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덜 깬 잠에 지팡이 끝에 칼을 묶은 창을 들고 문밖을 나서는데 저쪽에서 비구니 스님이 깡패 두 놈에게 쫓기어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학장스님은 이미 진여문 밖에 내 모셔져 있었다. 나는 먼저 화단의 돌을 집어 들었다. 비구니 스님을 지나가게 하고 두 깡패를 향해 돌을 던졌다. 깡패들이 주춤거렸고 그 사이 비구니스님은 무사히 빠져나갔다. 방안에서 함께 잠자던 스님들도 모두 나왔다. 조금 있으니 깡패들이 둘이 아니었다.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진성 깡패가 따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동료들에게 튀어. 라고 했다. 각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리는 평소 퇴로로 경기고등학교 언덕으로 통하는 개구멍을 보아 두고 있었다. 그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개구멍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가시철사로 개구멍은 막혀 있었다. 짧은 시간에 가시철사는 새것이지만 기존 철사는 낡았으니 들이받으면 터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입고 있던 누비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들이받았다. 생각은 맞았다. 경기고 언덕에 올라 가쁜 숨을 고르는데 검정 옷을 입은 진성 깡패들이 우리가 뚫고 올라온 울타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그제서야 옆에 스님을 돌아보니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나가 난처해했다. 봉은사에서 살아생전 49재를 지내고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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