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법인설립과 각종 학교 인가
학교로 돌아왔다. 어느새 방학이 끝나고 2학기에 들어섰다. 성문스님과 원해스님은 그대로이고 학교의 빈소임 또한 그대로였다. 짐을 싸서 정리하고 원주로 돌아가려 했다. 이혜성 학장스님이 학생국장겸 사감 소임을 그대로 보라고 하시기에 짐을 싸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자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더는 소임 살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시기에 “사감으로서 학생들을 편 가르고 분란을 만들었으니 기숙사 생활을 함께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작은 책임감도 있고요.”라고 하며 내 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학장스님은 “그러면 그러지 말고 원해스님도 없고 하니 학생국만 맡아 달라”고 하시기에 돌아보니 소임 자리의 빈공간이 많아 주저앉고 말았다.
2학기는 학생회장단의 학교 소임자에 대한 불신, 돌아온 1학년의 독기와 2학년의 반감, 3학년의 저항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올림픽은 개막을 하고 성문스님과 원해스님도 나왔다. 봉은사는 물밑 작업과 평화적 협상으로 학교재정 지원 사찰로 마무리를 했다. 이후 학교에서는 4년제 각종학교 인가를 취득하기 위한 작업에 몰입했다. 금정스님과 수완스님은 법인 정관과 규정 학칙 교과과정과 교수초청 및 대외적 정관계 인사방문 등 바쁜 움직임으로 사무실을 총무원으로 옮겼다.
89년 7월 학교법인 승가학원 설립인가가 났다. 초대이사장으로 서의현스님이 취임을 했다. 명실상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이사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법인을 모체로 학교설립 인가를 얻어야 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나는 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4년제 대학에 준한 각종학교 인가를 받는 부분에 있어서는 3년차 재정 지출 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해야 했다. 입학정원 120명에 교수 강사 급여 및 보너스, 직원 복지 여타 운영경비를 포함한 3년차 재정 수입지출 계획서이다. 재정이 부족한 학교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교수 선임이나 학년별 학과 커리어에 대한 것은 기존 금정스님과 수완스님이 했지만 재정 파트는 독박이라 할 정도였다. 밤이면 모두가 모여 앉아 밤을 새울 정도였다. 금정스님이 입학금과 육성회비를 관항으로 수입을 잡자고 했다. 늘어나는 것은 종단특별 지원금과 중앙승가대학 재정 지원사찰인 봉은사와 개운사의 재정 도움과 신도 특별장학 지원금이었다.
교육부 예산 개정안의 관항목을 맞추어야 했다. 학교에 재무 회계 담당 직원이 있었지만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도 애를 먹었다. 나 또한 재정은 봐온 적이 없었다. 전문가에게 맡긴다 해도 지원해줄 서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1년치 재정수입지출 예산서를 짜고, 이후 년도 별 인상 프로테이지를 감안해 2년차를 만들고, 같은 방법으로 3년 차 예결산 서류를 만들어 교육부에 제출했다. 두 번 이나 되돌아왔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서류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이유라도 알면 보완할 수 있고, 조건은 맞추면 되는 것이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챙겨 재무담당 직원과 교육부를 찾았다. 도포자락 휘날리면 교육부 청사 민원실에서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담당 사무관을 찾아 들어가니 온 이유를 물었다. 내가 “저희는 교육부로부터 4년제 각종학교 설립을 위해 학교법인 승가학원 설립 인가를 금년 7월에 얻었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법인 승가학원에서 설립하는 각종학교 설립인가를 취득하기 위해 3년차 예결산서를 제출하라 하기에 서류 제출을 하였는데, 두 번이나 되돌려 받았기에 이에 연유를 알고자 직접 들고 왔습니다. 서류를 보시고 부족, 수정 여타 부분을 지적해 주시면 성의를 다해 보완해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나의 말을 듣고 사무관이 뜻밖에도 놀라는 모습으로 “그렇습니까? 서류를 놓고 가십시오. 살펴보고 회신하겠습니다.”라는 답을 주었다. 나는 돌아오면서 서류 미비나 부족한 부분은 늘 있는 것이라 한 번 더 밤샘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기우였다. 90년 2월 각종학교 설립인가가 떨어졌다.
4)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
학교에서는 교육부로부터 설립인가가 날 것이라는 예상 하에 신입생 모집 요강을 만들고 입학시험 준비와 학교 설립인가 확정을 공고했다. 어느 때보다도 들뜨고 자신 있는 학교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학생 모집과 3월 입학을 마쳤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사건이 터졌다. 학교 설립인가는 취득했으나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은 받지 아니한 것이다. 아니 일을 추진한 사람들이 학교 설립인가와 학력 인정이 분리된 줄 모른 것이다. 학교 설립인가를 얻으면 학력 인정은 자연 따라 오는 것으로 봤다. 다시 서류를 갖추고 학칙 학사 교과목 교수 도서관 운동장 등 많은 부분이 재수정되고 91년 3월에야 교육부로부터 4년제 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을 취득했다. 기쁘기 한이 없는 일이지만 이에 따른 문제는 남아 있었다. 부분 회의와 전체 회의를 했다. 90년 학교 설립인가를 취득하면서 신입생을 모집했고,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모집 요강에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 학교로 발표를 한 것이다. 즉 90년도에 4년제 정기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학교로 모집한 2학년에 올라갈 학생들에게는 학력 인정이 안 되고, 91학년도 신입 학생부터 학력이 인정된다는 청천 벼락같은 사건이 생기고 만 것이다. 학교 학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고심했다. 쉬이 풀 수 있는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못 학내 소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희망은 희망대로 날라가는가 했다.
회의를 하면서 91학년도에 4년제 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을 득했으니 91학생부터 적용을 하는 것이 옳고 정당하다는 견해와, 지금 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도 학력 인정을 받는 줄 알고 1년을 힘들게 다녔는데 이 일로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이미 다닌 1년도 그렇고 앞으로 3년을 비어있게 되고,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를 다닌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게 되면 2학년이 비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보상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어느 한쪽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즉 1학년 신입생의 당위성 위에 학교가 서 있느냐, 2학년 학생들의 희생 위에 학교가 서 있느냐. 아니면 갓 인가 난 학교가 자멸하고 마느냐가 달려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소임자 몇이 저녁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지만 별반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고민은 깊었다.
궁여지책이라 생각하면서 내가 말을 꺼냈다. 금년도에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인가를 취득해 1학년 위주로 실행해야 맞지만, 작년 신입생 모집 입학 요강에서도 학력 인정을 강조했던 만큼 소임자들의 업무 형태의 비방과 꾸지람을 감당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 1학년 신입생에게는 학교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하면서 학교 존립을 위해 양보를 바래고, 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에게도 일을 한다고 열심히 했지만 성글고 놓친 부분이 있어 여러분들의 기대를 어긋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대신 일학년 신입 명단으로 재조정해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를 위해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해 장학금과 복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또 힘의 논리에서도 1학년 신입생들이 들고 일어나는 학내문제보다 2학년이 들고 일어서는 학내문제에 대한 힘도 훨씬 강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2학년 학생들을 우선 생각고 배려하는 만큼 일학년 신입생을 2학년 학생들이 다독이고 설득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5) 졸업생들을 위한 재등록과 학사 관리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신입생과 2학년간의 학력 인정 일은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다.
2학년이 1학년으로 등재하면서 기존 2학년 120명의 정원을 못 채웠던 만큼 부족한 정원은 신입 입학생 가운데 군입대 할 나이 어린 스님과 나이 많은 스님을 우선으로 하였다. 까닭에 같은 학년을 다녔으면서 졸업년도는 다름이 있다. 92년에 들어서는 기존 1학년의 남은 숫자와 신입 모집 인원으로 조절하였다. 93년 들어서는 신입생을 제대로 모집할 수 있었고, 120명의 정원을 채우기에는 저만큼 서 있는 남이었다. 까닭에 93년 한 해에 한해서 졸업생들을 위한 재입학 등록을 편법으로 허용하였다. 사태의 폭력성과 일의 다변성의 불신으로 졸업 동문들에게도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을 얻기 위한 재입학 등록은 많은 호응을 얻지 못한 가운데, 편법인 줄 알면서 학교 발전에 동참하는 일부 동문스님들은 선방에서 안거를 나면서도 은사스님을 통해 재등록을 하는 적극적인 스님들도 있었다.
봉은사 폭력 사태의 데미지 속에 법인설립인가, 각종학교설립인가, 4년제 정규대학에 준하는 학력 인정, 정진관 준공 등 많은 일을 성취했으면서도 졸업생들에게 조차도 불신임은 가을 석양 그림자만큼 컸던것이다. 당시 나는 신입생 입학과 재학생 재등록 담당 관리를 하면서 월우스님을 비롯한 몇몇 스님은 재등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학사를 관리하는 데에는 나름 보안이 필요했고, 불완전한 전체 명단을 교학처장실 커튼 속에 감춰야 했다. 교학처장실은 처장스님 외 출입 금지가 되었다. 또한 학적부와 학점은 두 부를 작성하는 번거로움 속에 이기해야(?) 하는 업무 중과로 연장근무는 일상이 된 교학처였다.
6) 김포학사로의 이전
성문스님은 학교 이전에 많은 신경을 썼다. 4년제 정규대학교로의 승격을 위한 부지확보에 발품을 팔았다. 경주, 안성, 남양주, 양주, 김포 등 부지로 적격한 곳은 모두 돌아보았다.
4년제 정규대학교로의 승격을 위해 승가대학을 김포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이전 설립 비용과 종회 의결이 필요했다. 아쉬움에 승가대학 출신 종회의원 몇 명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한스런 말도 했다. 각자 여러 종회의원스님들을 찾아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씀드렸다. 나는 해인사 강원 선배이신 장륜스님을 종회 회기 중에 찾아뵈었다. 회기 중이라 청사 뒤에서 거두절미하고 “승가대학이 종단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김포로 이전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했다.
장윤스님은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봉은사를 종단에 들여놓을 것, 승가대학 동문들이 집단결집에서 벗어날 것, 승가대학을 종단 교육기관으로 동문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 등이었다.
스님께 말씀드렸다. “종단에 승려 전문 교육기관으로 몇 개의 본사에서 강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종단에서 운영하는 승려만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입니다. 거대 종단 조계종에서 승려 전문교육기관 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종단에서 승가대학을 종단의 현대적 교육기관으로 운영 육성한다면, 승가대학을 동문들이 운영하는 대학이 아니기 때문에 기득권은 사실상 상실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승가대학 졸업생이 이 삼백여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단단하게 결집 된 것같이 보이지만 졸업 숫자가 늘어나고, 늘어난 만큼 등한시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또 늘어난 만큼 하고자 하는 일이 다를 것이고, 다른 만큼 분파되어 각자 주장하는 소리가 제각각일 것이며, 힘 또한 강하지 못할 것입니다.
봉은사는 폭력을 수반하여 얻은 승가대학교 교육 지원사찰입니다. 종단에서 그만큼 교육에 예산 배정이 없었던 것이고 궁여지책으로 분쟁 종식을 위한 방편도 있었지 않습니까? 승가대학을 종단 교육기관으로 하여 종단 교육 예산으로 교육을 시키는데 더 이상 봉은사가 승가대학만의 교육지원 사찰로 존속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혹, 만약에 종단에서 승가대학을 종단 교육기관에서 배제하고 승가교육을 등한시 한다면 그때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견제 속에 종회에서는 종단 교육기관 인정과 김포부지 확정, 학교이전 건축비 조달 방안, 학교 운영비를 종단 교육원을 통해 법인으로 지원하는 것 등이 의결되었고, 국가교육부로부터 김포 이전 승인을 얻어 교육 불사를 위한 학사 건립이 시작되었으며, 그 당시 학장 이혜성 스님을 중심으로 성문, 범산, 지운, 수완, 금정, 성혜, 원정, 청화, 무상, 법광스님 등이 있었다. 전쟁 중에도 교육은 실시해야 한다고 하듯이. 폭력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도 교육을 위해 이태리제 회칼을 들어 봤냐고 말을 꺼내곤 한다.
지금은 승가대 졸업 동문이 1,500명에 달하고 종단 중요 소임도 총무원장, 종회 의장 호계원장 포교원장등을 역임했다. 교육위 힘이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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