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미륵대불은 영암스님의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미륵대불을 봉안하자”는 기원으로, 밀운스님 재임시 1986년 11월 미륵대불 봉안불사를 발원하면서 봉은사 사부대중은 3000배 철야정진을 거행하였고, 이성문 주지스님 재임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1000일 기도가 진행됐으며, 밀운, 대운, 성문 스님을 거쳐 1996년 1월 27일 성도절을 앞두고 무상 스님 주지 재임 2년 만에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미륵봉안불사 발원”이 10년 만에 점안식을 봉행하게 되었다.
미륵불사가 밀운스님 주지 재임시에 시작 됐으나, 94년 불교 개혁으로 이성문 스님이 물러날 때 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였다. 무상스님이 94년 주지 임명을 받고 나는 95년 정월에 봉은사 포교실장으로 방부를 드렸다. 방부를 드리고 모여 앉은 자리에서 주지로서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하시기에 스님께서 하실 일은 전임 주지들이 신도들과 약속한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봉은사는 변밀운 스님 주지 때부터 미륵불사 추진을 하면서 신도님들에게 화주를 했었고 전대운 스님 주지 이후 이성문 스님이 주지 끝날 때 까지 미륵불사가 어떻게 얼마만큼 진전 되었는지 신도들은 드러난 불사가 보이지 않으니 의혹만 컸기에 현황파악과 불사가 이어진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먼저이었다. 이를 마무리 하지 않고서는 봉은사에서 어떤 불사를 한다고 하여도 신도들에게 신의를 줄 수는 없었다. 봉은사 사부대중은 다시 한 번 신심과 원력을 다잡았다. 무상스님 주지의 다잡은 마음으로 2년 만에 영암스님 미륵대불 봉안기원 10년 만인 96년 미륵대불 봉안 불사를 회향할 수 있었다.
미륵대불을 봉안하기까지 무상 주지스님의 봉안 의지와 원력에 주지스님의 독자기도는 물론 목탁소리가 멈추지 않는 대중스님 들의 168시간 릴레이기도는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알기에 미륵대불 봉안식이 끝나고 다담(茶談)을 하는 자리에서 ‘이제 주지 임기 2년이 지났으니 다음 주지에게 물러줄 생각으로 쉬었다 가시지요.’ 했더니 무상 주지스님 하시는 말씀이 “중이 놀면 뭐하겠느냐며 법왕루 확장 불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법왕루를 신축한다고 하니 말들이 많았다. 강남 개발 이후 봉은사 신도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신도가 늘어나고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비를 맞으며 탑전에 서서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까닭에 변밀운 스님은 제일먼저 법당과 진여문을 크게 신축했다. 본시 예전에는 법당보다 법왕루가 조금 더 크게 지어졌었으나 밀운 스님이 법당만을 크게 짓다 보니 법왕루가 작아지게 되었다. 법당불사완공만을 보고 봉은사를 다녔던 신도들은. 봉은사 옛 가람 형태는 알지 못하고 오로지 밀운 스님이 지어놓은 법당과 기존 법왕루만을 인식했다. 이에 인식된 불자들은 법당보다 건물이 크면 안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할 때면 그때마다 법왕루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해야 했다.
삼국유사의 「감통(感通)」편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조에는 “남자 신자 수십명이 서방정토를 구하는 뜻에서 주변에 미타사란 절을 세우고 만일(萬日)을 기약하여 계(契)를 만들었다. 그 때 아간 귀진의 집에 계집종 하나가 있었는데 욱면이라 불렀다. 욱면은 주인을 모시고 절에 가 마당에 서서 스님을 따라 염불했다. 그녀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위에 매고는 합장하면서 좌우로 흔들며 자신을 스스로 용기와 힘을 북돋았다. 그 때 하늘에서 외치기를 ‘욱면랑은 법당에 들어가 염불하라.’고 했다. 지금의 법왕루는 다수의 신도를 수용하기 위해 확장 공사를 한다지만 옛날에는 노비가 법당에 들어가는 일은 하늘의 현시가 있어야 법당에 들아 갈수 있다는 극히 드문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비뿐만 아니다. 양민이라 할지라도 법당을 출입하는 일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는 뜻이다. 법당에는 양반이 출입하고, 법왕루(만세루)는 양민들이 출입하고 노비는 마당에서 법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까닭에 법왕루는 법당보다 넓었고, 법왕루보다 마당이 넓은 것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신축 법왕루 형식은 예전 법왕루 와 같은 방법이다. 돌기둥을 세워 화주 시주 이름을 각인하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올리는 것으로 크기와 형세가 다를 뿐 방식은 같았다. 그러나 여론은 많은 것을 가로 막았다. 돌기둥이 너무 많다 해서 두 개의 기둥 자리를 빼내고, 법왕루 지붕높이가 법당 지붕보다 높다하여 돌기둥 높이를 한자 정도 잘라 내야 했다. 돌기둥 두 개를 없애야 할 적에는 대목장 최기영씨에게 두 개의 돌기둥을 빼고 원목나무를 가로 지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달라고 했고, 또 높은 돌기둥 한자를 잘라 낼 때는 박찬수 불모에게 요청을 했다. 덕분에 종무소로 쓸 수 있는 공간이 확보 되었다. 건물은 웅장하고 거룩했다. 봉은사에서 제일 큰 건물이 되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기도하던 신도님들이 눈비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들 걱정을 덜게 되어 더없이 좋았다.
새로운 법왕루를 건립하는 데에는 기존 작은 법왕루와 사천왕전을 철거해야 했다. 기존 법왕루와 사청왕전은 1942년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97년 당시 55년 정도 된 건물이기에 그 가치를 자세히 살피지를 못했다. 다만 화주 시주 자손들이 대를 이어 봉은사를 다닌다는 생각과 가끔 가족들이 기존 법왕루 돌기둥에 각인된 화주 시주 명단 앞에 모여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내가 무상주지스님께 내가 말씀을 드렸다. ‘미륵대불을 신도님들과의 약속을 지킴으로 신도들이 신심과 원력이 한층 돈독해져 법왕루 불사에 정성껏 자신들의 분에 따라 불사에 동참하고 있는데 저 기존 법왕루를 없애 버리면 옛날 불사에 동참했던 선대 신도 가족들의 신심이 떨어질까 저어됩니다. 그러니 미륵전 앞으로 이전하여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갔습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무상주지스님도 “전각을 새로 더 세워도 부족한데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사천왕상은 진여문으로 이전하여 봉안하였지만 사천왕전은 허물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삼스님이 도감 소임을 보면서 미륵전 이전을 위해 기초공사로 콩크리트 1m를 치는 대역사를 하였다. 처음에 구 법왕루를 미륵대불 광장 앞으로 이전해 놓으니 작고 초라했다. 미륵광장이 워낙 넓어서인지 패랭이가 광장 안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짧은 생각에 구 법왕루는 제자리에 두고 미륵대불 전각으로 신축 미륵대불전을 지어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구 법왕루를 미륵대불 광장 앞으로 이전한 효과는 바로 돌아 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선대 신도 가족들이 미륵대불전 앞으로 옮겨진 구 법왕루를 보고 사중에 감사인사를 먼저 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신축 법왕루 불사에 동참하기도 했다. 작고 초라하기까지 했던 구 법왕루는 여름철에는 몰랐던 건물의 필요성이 겨울철이 되니 확실해 졌다. 겨울이 되니 눈과 북풍을 막아주는 따뜻한 건물이 되었다. 작고 아름다운 건물로 나이든 어른처럼 노숙미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신축 법왕루 불사를 하면서 놓친 부분이 있다. 정해진 날이지만 구 법왕루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사천왕상을 이전하고 사천왕전과 구 법왕루 내부 정리 정돈을 하는 일이 길어 졌다. 생각 같이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는 인부들이 사천왕전과 구 법왕루 사이에서모닥불을 피우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날씨가 추우니 그러려니 하고 다가가서 보니 구 법왕루 내에 시인 묵객들이 봉은사 풍류를 남긴 시를 새긴 시판들을 태우고 있었다. 늦었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조금 일찍 들려다 봤다면 주섬주섬 주어다 판전 구석에라도 놓아두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미륵대불 앞으로 이전한 구 법왕루는 지금의 미륵전으로 신축 법왕루 이후 26년의 보존에 81년의 나이를 먹은 젊은 노인이 되었다.
함께하는 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