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음(梵音)이 처음 지어진 것은 위(魏)나라 조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동방의 진감(眞鑑) 노사(老師)가 중화(中華)에 들어가 본을 받아 돌아와 옥천(玉泉)에 음향을 남긴 이후 우레처럼 산을 울리고, 개구리 울음소리 비루함이 한 번 변하니 지나(支那) 인도(印度)와 비슷하게 되었었다.
지금은 법이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도 성글다. 음(音)도 또한 이러한데 감히 포고(布鼓)로서 천뢰(天雷)를 들이받으려 한다. 도도(滔滔)함을 모두 이러하다.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방장(方丈)의 음(音)이 온 나라를 덮으니 귀를 더욱 기우렸다. 그가 읊는 게(偈)와 구(句)는 선법율(禪法律)의 삼장(三藏) 가운데에서 가려 뽑았으며, 혹은 그 때 명언(名彦)들의 손에서 나온 것을 입으로 가르치고 손으로 전하면서 오언(烏焉)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속일 수 있으나 성인(聖人)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크고 작은 연회를 베풀어 부처님께 공양하고 천신에게 기도드릴 때에 모든 성인들이 만약 그 잘못을 보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면, 아아, 어찌 두렵지 않으랴.
아무 상인(上人)은 방장(方丈)의 문도이다. 그의 음웅(音雄)은 단정하여 발췌(拔萃)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성교(聲敎)의 물결이 무너짐을 개탄하고, 마음으로 괴이한 집착을 알고자 하여 틀린 것을 바로 잡았으나,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뛰어난 여러 성도(聖徒)들과 걸사들을 청하여 번잡한 것은 깎고 빠진 것은 보충하면서 옳은 것은 거듭하고, 틀린 것을 고쳐서 나누어 삼축(三軸)이 되었다.
이미 또 부족한 것은 내가 고증(考證)하였다. 전말(顚末)을 쓰라고 하기에 나는 재주가 없다고 굳이 사양했으나 그 사람의 청이 견고하고 극심하므로, 나는 이웃 사람들이 달아날 것을 돌아보지 않고 감히 서자(西子)를 본받은 것이 되었다.
계묘년 중추 일에 무용 수연이 정중히 적었다.
*권여(權與) : 저울대와 수레의 받침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처음을 이르는 말.
산응(山應) : 좋은 자리에 뫼를 씀으로써 그 자손이 받는다는 복.
포고(布鼓) : 포고(布鼓)는 베로 만든 북으로 소리가 잘 나지 않는 북이다. “포고를 가지고 뇌문(雷門)을 지나가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도도(滔滔) : 큰물이 출렁이다. 끊임없이 말하는 모양. 도도하다.
오언(烏焉) : ‘烏’와 ‘焉’의 글자 모양이 비슷한 연유로 해서 글자를 잘못 쓰는 일을 이르는 말. 문자의 착오. 오(烏)·언(焉) 자가 마(馬) 자로 잘못 쓰이다.
설연(設筵) : 设宴(주연을 베풀다)
발췌(拔萃) : 책이나 글 등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가려서 뽑음. (재능이) 출중하다. 특별히 뛰어나다.
와천(訛舛) : (문자의) 착오. 잘못. 틀림.
이집(異執) : 아집과 법집, 증집과 감집 따위의 두 가지 그릇된 집착.
걸연(傑然) : ‘걸연하다’의 어근. 뛰어나다.
전말(顚末) : 어떤 일이나 사건이 진행되어 온 처음부터 끝까지 경위.
서자(西子) : 춘추 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의 미인(美人) 서시(西施).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게 패한 뒤에 미인계(美人計)로 서시(西施)를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보내니, 부차는 서시에게 혹하여 고소대(姑蘇臺)를 짓고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여, 마침내 구천(句踐)과 범소백(范少伯)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음.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참선하는 여유에 응해가 어산을 구하기에(禪餘應海魚山之求)
雄朗圓音震萬壑 웅랑한 원음이 일만 골에 진동하니
無風草木便搖靑 바람도 없이 초목이 푸르름을 떠네.
玉泉遺響今猶在 옥천이 남긴 음향이 지금도 남았는데
彷彿當年掩鼻聲 당년에 코 막은 소리와 비슷하다오.
『무용당유고』 無用堂集上
*무용당 수연(無用堂 秀演, 1651~1719) 스님의 문집인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옥천(玉泉) : 옥천사(玉泉寺) 지금의 쌍계사(雙磎寺)이다. 진감 선사 혜조(慧照)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2년(840)에 지리산 옥천사(玉泉寺)를 중창하고 수도하며 『魚山九鑑』을 지었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젊었을 적에 콧병을 앓아서 마치 낙양洛陽 서생書生의 성조聲調처럼 굵고 탁한 코 먹은 소리를 잘 내었는데, 당시의 명류名流들이 이 음성을 좋아하여 모방하려고 해도 잘 안 되자 “손으로 코를 막고 읊조렸다.(手掩鼻而吟)”라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世說新語』 「雅量」) 최치원崔致遠의 『孤雲集』 제2권 진감 화상眞監和尙 비명碑銘에 “선사는 본디 범패를 잘하였다. 그 음성은 마치 금옥金玉이 울리는 것 같았는데, 측조側調의 가락으로 날리는 소리가 상쾌하고도 애잔하여 제천諸天의 신神들을 환희하게 할 정도여서 길이 먼 곳까지 유전流傳될 만한 것이었다. 이를 배우는 자들이 당우堂宇에 가득하였는데, 선사는 싫증을 내지 않고 이들을 정성껏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국東國에서 어산의 묘음을 익히는 자들이 다투어 코를 막고 내는 것(掩鼻)처럼 하면서 옥천의 여향餘響을 본받고 있으니, 이 어찌 성문聲聞으로 제도濟度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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